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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I feel pretty 2023. 4. 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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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돌아올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어요. 오늘은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세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정의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에 대한 애호사상을 앙양하기 위하여 지정한 날.

2. 내용

5월 5일.

1919년의 3·1 독립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1923년 방정환(方定煥)을 포함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가 1927년 날짜를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1923년 5월 1일 첫 번째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 배포되었는데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고 당부했다. 방정환은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어린이에 대한 존중을 부탁한 것이다. 첫 번째 어린이날의 구호는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갑시다”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5월 5일로 정하여 행사를 하여왔으며, 1961년에 제정, 공포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하였고, 1973년에는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75년부터는 공휴일로 제정하였다. 201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그다음 비공휴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 날은 어린이가 따뜻한 사랑 속에서 바르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하며, 불우한 어린이들이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 위로하고, 모범어린이 및 아동복지사업의 숨은 유공자를 발굴, 표창하는 한편,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행사를 실시하여 체력향상 및 정서함양을 도모한다.

각 시·도, 시·군 및 단체별로 어린이가 참석하는 기념식을 거행하는데, 기념식전에서는 「대한민국어린이헌장」을 낭독하고 착한 어린이·청소년을 시상한다. 또한, 어린이체육대회·웅변대회·글짓기대회·가장행렬·묘기시범·밤불꽃놀이·어린이 큰 잔치 등을 거행하기도 한다.

3."어린이 "말의 어원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대 들어 방정환이 정착시키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어. 방정환은 아동문학가로서 우리나라 첫 아동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고 어린이 단체도 만들었지.

동화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지방마다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었대.

그가 어린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천도교의 영향이야. 천도교는 ‘어린이’를 새롭게 정의하고 어린이운동을 전개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어.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천도교의 사상 속에서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요구가 가능해졌지.

천도교에서는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므로 아이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어. 방정환은 천도교를 믿는 사람이었고, 이런 생각에 뜻을 같이했던 거야.

방정환이 생각한 ‘어린이’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놀고 걱정 없이 지내는 그런 모습이었어.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암울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지. 그때 어린이들의 실제 모습은 방정환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어.

그때에는 의무교육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교육을 받는 어린이도 많지 많았어. 대개의 어린이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지.

비록 현실이 가혹할지라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날이 만들어졌대.

천도교소년회는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선포했지. 1923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 행사가 천도교당에서 열렸어.

기념식 뒤 200명의 소년들이 경성 시내를 4 구역으로 나누어 집집마다 아래와 같은 선언문 12만 장을 배포했어. 그 뒤 어린이날은 전국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로 발전됐지.

<취지>
젊은이나 늙은이는 일의 희망이 없다. 우리는 오직 나머지 힘을 다하여 가련한 우리 후생 되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자.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2.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3.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정인섭, 『색동회 어린이 운동사』, 휘문출판사, 1981, 53쪽)

선언문은 장유유서에 찌든 옛 질서와 어린이 노동으로 대표되는 압박을 없애고 배우고 놀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어.

사실 이 선언문은 인권선언과 비슷해. 그만큼 어린이운동은 일제강점기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지.

곧 어린이를 깨우치고 그들에게 권리를 부여해서 미래를 이끌 주체로서 길러내는 일이 식민지시대 어린이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어.

어린이날은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로 새싹이 돋아나는 5월 1일로 정해 1923년 처음으로 기념행사를 했대. 1927년부터는 5월 첫 번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치렀지.

그런데 어린이날이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일제는 행사를 금지시켰어. 어린이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에도 학교에서는 수업을 했대.

해방 뒤 첫 어린이날 기념식은 1946년 5월 5일 오전 11시부터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와 어린이날 서울시준비위원회 공동 주최로 거행됐어.

천도교소년회, 조선소년운동중앙협의회 등 18개 소년 단체에서 수천 명이 참석했지.

자리에서 4명의 남녀 어린이가 다시는 집도 말도 빼앗기지 않고 새날 새 조선의 주인으로서 열심히 배우겠다는 「소년소녀의 선서문」을 낭독했어.

우리는 왜족에게 짓밟혀 말하는 벙어리요 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집과 우리 글을 찾기로 맹세합니다.

우리는 새 조선 건설의 일꾼이요 새날의 임자인 것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집도 빼앗기지 않고 말도 잃지 않기로 굳게 기약합니다.

우리는 왜적으로 해서 다른 나라 어린이보다 너무도 뒤졌습니다.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서 다른 나라 동무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조선의 어린이인 것을 잊지 않고 단단하고 끈끈하게 뭉치겠습니다.

(<현대일보>, 1946년 5월 6일)
일제강점기에는 ‘어린이날’ 알리기, 어린이도 인격을 갖고 있음을 알리는 데 힘썼어.

해방 뒤에는 어린이들이 참가하여 희망이나 포부 따위를 말하고, 모범 어린이를 표창하거나 음악 · 무용 · 사생 · 백일장 같은 대회를 열었지.

해방 뒤 첫 어린이날인 1946년 첫 번째 일요일이 5일이어서 그 뒤부터는 요일에 관계없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됐단다.


오랜만에 예전 어린이날 노래를 보게 되니 마음이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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